| 빨갱이 마을의 역사를 찾아서 |
| 인류학자의 과거 여행 |
| 윤택림 저. 역사비평사, 2003 |
윤택림
흔히 역사는 공적 영역의 것이고 가족은 사적 영역의 것이어서, 가족은 변화와는 무관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가족을 하나의 사회적 제도로써 인식할 때, 가족이 사회적, 역사적 변화와 무관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가족사 연구는 그런 의미에서 가족의 삶의 경험을 통해 개인, 가족, 역사적 상황과 변화와의 역동적인 관계를 살펴볼 수 있게 한다. 즉 가족을 거시적 사회구조를 반영하는 거울로서 그리고 사회구조와 개인 행위를 연결하는 교량(macro-micre linkage)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가족의 역사적 경험은 곧 가족을 통해 본 또 하나의 역사쓰기가 될 수 있다.
극심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문화적 변동을 거쳐 온 한국 근현대사는 현재 한국 가족들의 삶에 뚜렷한 각인을 남겼다. 그래서 한국 가족들의 삶은 가족과 그 안의 개인들이 한국 근현대사의 굴곡과 변환을 어떻게 이해하고 대처했는가를 보여준다. 특히 일제 식민지배와 한국전쟁이 낳은 분단의 현실은 한국 가족들 삶에 깊게 각인되어 있다. 이산가족은 한국 근현대사가 가져온 비극 중의 하나이며, 분단으로 인한 가족의 해체와 분리는 일상적인 가족의 삶에 아직까지도 계속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다. 이산가족들의ㅡ 가족상봉에 대한 현실적 요구는 분단시대 한국 가족연구의 중요성을 말해주기도 한다. 왜냐하면 분단과 관련하여 가족을 연구하는 일은 현재 한국사회가 가족의 현실을 이해하는 것임과 동시에 통일을 준비하기 위한 작업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장에서 한 지방 좌익지도자 가족의 삶의 경험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와 분단 현실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남한 사회에서는 마치 이북에서 월남한 실향민만이 분단 현실을 안고 살아가는 것으로 인식되어 있다. 그간 남한에서 이루어진 이산가족 찾기 운동은 한국전쟁으로 가족의 해체를 경험한 가족들의 흩어진 가족을 찾아주는 것이지만, 그 범위는 남쪽에만 한정되어 있었다. 그래서 북한이 있는 가족을 찾는 작업은 보다 비공식적, 개인적 통로를 통해 이루어져왔다. 2000년 6.15 남북한 정상회담 이후 재개된 이산가족 상봉은 남과 북에서 함께 서로의 헤어진 가족들을 다시 만나게 해주었다. 앞으로 남북통일 과정에서 이산가족의 만남이 남과 북에서 계속적으로 이루어지길 바란다.
그러나 남한 사회에서 이 같은 이산가족 찾기에 참여하지 못하는 이산가족들이 있다. 남한에서 태어나서 자랐던 수많은 좌익운동가 가족들은 한국전쟁을 통해 가족의 해체를 경험했고, 그들의 가족 중 몇몇은 북으로 갔거나 죽었거나, 지금까지도 행방불명되어 있다. 가족원의 좌익활동 전력 때문에, 이들은 자신의 이산가족을 찾은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전후 남한의 반공이데올로기에 기반한 군사정권의 공포와 연좌제로 인한 극심한 사회적 차별 속에서 살아왔다. 나는 그러한 남한 좌일 가족 중 하나인 시양리(충남 예산군의 한 마을, 가명으로 지은 이름)의 좌익지도자 유찬길(가명) 가족의 역사적 궤적을 살펴보고자 한다.
유찬길 가족사를 재구성하기 위해 사용된 자료는 유찬길의 셋째아들인 유근찬(1935년생)과 유찬길의 6촌 동생인 유찬호(1922년)를 주요 제보자로 한 인터뷰 자료다. 유근찬은 원래 셋째아들이지만, 한국전장 동안 위의 두 형이 죽고 행방불명되었기 때문에 장남 노릇을 하게 되었고, 현재까지 시양리에서 과수농사를 짓고 있다. 처음에 그는 자신의 가족사에 대해 밝히길 꺼렸으나, 침묵되어온 가족사를 밝히는 작업이 중요한 점에 수긍하여 인터뷰에 응해 주었다. 유찬호는 아직 예산군에 남아 있고, 그의 아버지 행적을 알고 있는 친척이기 때문에 그가 소개해주어 인터뷰가 가능했다. 또한 이 두 제보자의터뷰 외에도 기타 예산군과 시양리에서 행한 현지조사 자료를 사용했다. 이 가족사의 재구성은 각 시기별로 인터뷰 내용을 인용하고, 그 구술증언을 본 연구자가 맥락화(contextualization)하는 형식을 취했다.
(출처: “한국 근현대사와 유씨가족” 위의 책. pp. 198~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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