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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서울 역사박물관에서 동농 이해조(1869-1927) 심포지움이 있었어요.
저도 거기에서 <이해조 작품의 창작공연 가능성>에 대해 발제를 했습니다.

이인직은 <혈의 누>로 우리나라 최초의 신소설 작가라고 해서 우리 근대 문학사
종심에 놓여 있는 분이죠. 이해조는 <자유종>을 쓴 분으로 이인직의 그늘에
가려진 인물입니다만, 이해조의 작품 세계를 아는 분들은 이해조를 우리 문학,
지성계, 문화계를 통털어 한국근대문학의 중심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인하대 최원식교수는 1986년에 이해조 소설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줄곧 그런 주장을 편 셈인데, 이번에 동농 이해조 기념사업회가 발족하고
이해조를 알리는 사업의 일환으로 심포지움이 열렸던 거죠...

난, 이해조가 1911년에 쓴 <화의 혈>이란 소설이 나온 배경, 당시의 풍토,
<화의 혈>의 공연화구조에 대해 얘기를 했어요...  자료를 파워 포인트 프리젠테이션으로
만들려고 이해조와 이인직의 사진을 찾아봤는데, 참 재미있는 대조가 되더군요.

아시다시피 이인직은 매일신보 사장 이완용의 비서로써 일어어 능통해서
이또 히로부미의 비밀 연락책으로 경술국치에 한 역할을 한 친일파이고
이해조는 인조의 세째아들 인평대군의 후손이고 대원군 측근으로써 조선왕조와
가까운 인물이죠. 이해조는 1910년 경술국치 바로 전에 <자유종>을 발간하는데
그의 소설 <빈상설> <홍도화> <구마검><화의 혈> 등을 보면 그가 왜 근대 문학의
중심에 서야 하는가에 대한 주장을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하여튼 친일행각을 하고 출세한 이인직과 나라가 망하자 글만 썼던 이해조가
대조됩니다.  이 두사람의 행적과 작업이 새삼스럽게 느껴진 어제였습니다. 
 


                      이인직과 이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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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roksm